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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부터 1978년까지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서 연쇄살인범 칼튼 마이클 게리가 활동했습니다. 그는 60세 이상의 노인 여성을 대상으로 주로 스타킹으로 목을 조르는 방식으로 7명을 살해했으며, 이로 인해 스타킹교살자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그의 범행은 콜럼버스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당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칼튼 마이클 게리의 범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범행 경위
칼튼 마이클 게리의 범행은 1977년 9월 16일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60세였던 펀 잭슨을 콜럼버스 원턴 지역의 그녀의 자택에서 강간, 구타하고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9일 후 71세의 진 디먼스테인을 10월 21일에는 89세의 플로렌스 실비, 10월 25일에는 69세의 마르타 서몬드, 12월 28일에는 74세의 캐서린 우드러프, 1978년 2월 12일에는 78세의 밀레드레 보롬, 4월 20일에는 61세 자넷 코퍼를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했습니다.
수사 및 체포
칼튼 마이클 게리의 범행으로 콜럼버스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고,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피해자들의 집에서 칼튼 마이클 게리의 DNA가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던 중 칼튼 마이클 게리는 1978년 12월 사우스캐롤라이나 개프스에서 강도행각을 벌이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후 그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DNA 증거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 등을 토대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논란
칼튼 마이클 게리의 범행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였지만, 그의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는 항소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했으며, 그의 변호인은 DNA 증거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칼튼 마이클 게리는 이후 각각 항소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에서도 상고를 기각당했습니다. 이후 칼튼 마이클 게리는 2018년 3월 15일 도극물 주사로 처형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칼튼 마이클 게리의 범행은 콜럼버스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당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칼튼 마이클 게리의 범행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으며, 연쇄 살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으며 독거노인의 주거 문제를 다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